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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료 가챠(뽑기)의 확률 표기를 하는 게 게임 회사에게도 이득이다
    ARTICLE/GAME 2021. 2. 22. 17:23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 때문에 업계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한국 게임에서 확률 표기는 의무 사항이 아니었고 업계의 자율규제에 맡기는 권고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 자율 규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니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에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는 이 움직임에 적극 반대하며,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영업 비밀 요소고, 확률 표기를 의무화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의 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입장문 전문

    www.kgames.or.kr/info-service/report-detail/201/

     

    한국게임산업협회

    K-GAMES, 게임산업 진흥, 자율규제, G-STAR, 대한민국 게임대상

    www.kgames.or.kr

    의원측, 협회측,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게임학회에서도 입장을 발표하며 계속 논의가 오고가는 중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일이 정리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이미 2015년에 비슷한 법안이 발의되었고 이에 대한 대처로 자율 규제를 실시하던 경위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같은 대처로 마무리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경우

     

     

    PROJECT SEKAI feat. 하츠네 미쿠(일명 프로세카)의 가챠 확률 표기. 각 레어리티별 제공 비율, 카드 별 제공 비율을 게시하고, 확정 확률을 별도로 기재하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일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온라인 게임의 가챠(뽑기)에서 확률 표기가 사실상 의무화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역시 확률 표기를 법률로는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가챠에 대한 유저들의 회의적 사고나 이를 대비한 업계의 자정 노력은 항상 있어 왔지만, 그걸 명문화한 법은 없는 것이 실정이다.

    (물론, 잘못된 확률을 기재하거나, 소비자가 확률 혹은 성능 등을 오인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하는 것 등은 모조리 위법이다. 또한, '컴플리트 가챠' 등 일부 가챠의 형태는 아예 법률에 의거하여 금지하고 있다. 단지 '확률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는 법이 없을 뿐이다. 금지된 '컴플리트 가챠'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작성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금지된 '컴플리트 가챠',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kim-yes.tistory.com/9

     

    금지된 '컴플리트 가챠',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2012년 5월 18일, 평화롭던(?) 일본 게임 업계에 한 가지 사건이 터진다. 일본 소비자청, 우리나라로 치면 소비자보호원쯤 되는 국가 기관이 다음과 같은 제목의 문서를 발표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

    kim-yes.tistory.com


    다만 JOGA라고 불리는, 일본 온라인 게임 협회의 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협회 회원사가 제작한 게임은 확률 표시를 시행하며, 회원사가 아니더라도 많은 게임이 이 가이드라인을 따라 가챠의 확률을 공지하고 있다. ‘랜덤형 아이템 제공 방식을 이용한 아이템 판매에 관한 표시 및 운영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1. 유료 가챠에서는, 이름이나 일러스트 혹은 종류 등, 이용자가 획득 가능한 모든 가챠 아이템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한다.

    2. 레어 아이템, 기간 한정 아이템을 제공할 경우 이에 대한 내용을 표시한다.

    3. 캠페인으로 가챠 아이템 제공 확률을 변경할 경우 이를 미리 고지한다. 고지는 전일까지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레어 아이템을 제공할 경우, 제공 비율(확률)을 표시하는 등 규정을 엄수한다.

    5. 유료 가챠 운영 시 운영 책임자를 정하고, 운영 책임자가 제공 비율(확률) 등을 승인한 사실, 가챠가 설정대로 적절히 가동되고 있음을 확인한 사실을 서면 등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을 사내에서 구축해야 한다.

    6. 가이드라인이 적절히 운용되도록 감사를 실시해야 하며, 감사는 유료 가챠 운용을 담당하는 부문에서 독립되어 있는 별개 부문이 실시하도록 한다.

     

    ※ 위 내용은 내가 임의로 발췌한 요약본이며, 전문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다. (일본어)
    https://japanonlinegame.org/wp-content/uploads/2017/06/JOGA20160401.pdf


    상당히 까다롭고 세세하고,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기준을 비교적 명확히 나누고 있으며, 이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이다.
    JOGA의 회원사는 NHN JAPAN주식회사, NC재팬 주식회사, 주식회사 넥슨 등 한국계 회사를 포함해 43사(2021년 2월 기준)에 이르는데, 대부분 온라인 게임 업계에서 실적을 거두고 있는 유명 업체들이다. 스토어 랭킹에서 만날 수 있는 상위권 게임 중 많은 수가 이 회원사에서 제작되고 있는데, 최소한 이 게임들은 회원사로서 JOGA의 가이드라인을 대부분 철저히 따르고 있다. 확률 공개도 그 중 하나다.

     

    아울러 지난 2017년 말에서 2019년에 걸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의 개발자용 앱 심사 지침에서 '유료 가챠의 확률을 공개하라'는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대부분의 일본 모바일 게임은 이를 준수하기 위해 확률 표기를 시행하게 되었다. 이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어플리케이션 등록 심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데, 그래서야 모바일 게임으로서 비즈니스가 성립하기가 아주 어려우니까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령이 없는 일본의 상황에서 '실질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 스토어가 된 상황이다. 

    이에 협회의 자율 규제용 가이드라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챠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던 게임, 대표적으로 '퍼즐 앤 드래곤' 등의 모바일 게임의 가챠 확률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일본의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퍼즐 앤 드래곤'. 겅호 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했다. 2018년 초까지 가챠의 확률 표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해 온 게임 기획자인 나는, 사실은 '가챠에 왜 확률 공개를 안 해?'라고 오히려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다. 철저하게 확률을 기재하고, 가이드라인을 엄수하며 일하면서도 딱히 비즈니스에 지장을 느끼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게임 회사 입장에서도 확률 표기를 하는 게 더 이득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한국에서 게임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개개인으로서는 '확률 표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것은 스스로가 유저였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업계 종사자로서 개인의 신념일 수도 있고, 회사의 입장까지 전부 고려한 실용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섞여 '자율 규제'라는 해결책까지 도달한 경위가 이미 있다. 이번 발의안에 대한 한국게임산업협회의 입장문도 '법제화에 대해 우려가 있다'는 것을 표명하는 취지지, 확률 표기 자체가 업계를 죽이기 때문에 결사 반대한다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다들 제각기 자기 위치에서 게임 업계를 위해 힘쓰시는 분들이다.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입장이 다를 뿐이다. 설령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부터 내가 적을 내용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확률 표기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 '확률 표기를 하면 회사가 망한다(다소 비약)'으로 맞서게 되는 우를 피해서,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빠르게 모색하기 위한 사고 방식을 제안하고 싶을 뿐이다. 

    유저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종래와 같이 확률 표기 없는 게임을 즐기거나, 회사가 매출 위기를 각오하고 확률 표기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제로섬 게임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회사가 확률 표기를 철저히 했을 때 어떤 이득이 생겨날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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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료 가챠(뽑기)의 확률 표기를 하는 게 회사에도 이득이 되는 이유


    1. 어차피 들킨다.

     

    어떤 식으로든 확률을 설정해 놨다면, 그걸 공시하든 않든 유저들은 체감 상 어느 정도의 비율로 어떤 아이템이 나오는지 알고 있다. 때로는 유저들끼리 단합해 뽑기 결과를 공유하며 스스로 확률을 추적하기도 한다. 전혀 다른 버그로 인해 화제가 되어, 가챠에까지 의혹이 불거지는 일도 있다.
    굳이 이름을 꺼내진 않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추적당한’ 결과, 유저들의 직관과 다소 동떨어진 확률이나 시스템을 가진 뽑기라는 것이 드러나 구설수에 오른 게임 서비스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도 생각보다 여러 개 존재한다. 의도적인 설정이었던 경우도 있고, 프로그램 실수였던 일도 있다.)

    ‘이렇다더라’ 하는 소문을 유저들 사이에서 공유하게 하는 것은 운영에 있어서 엄청난 리스크다. 유료 판매하는 확률 지급형 아이템에 관해 소문이 도는 일은 보통 불길한 일이다. ‘뭔가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심을 가진 사람에 의해 소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의 불씨가 하나 피어나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게임 전체로 번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불합리한 일이 벌어졌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소문이 돌면 일단 운영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쉽고, 신뢰가 떨어지는 게임에 과금을 할 유저는 없다. 운영이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하면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게임 이탈을 고민하는 유저가 늘어난다.

    유저들의 소문을 잠재울 단 하나의 방법은 확률을 투명하게 공지하고, 공지한 대로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럼 굳이 추적을 하러 나서는 유저도 없고, 돈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고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이미지로 신뢰감을 주기 쉽고, 안심하고 과금할 수 있다. 안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장기 운용 서비스의 토대가 된다.

     

    (단, 확률을 표시하더라도 그 확률 자체가 너무 낮거나, 로직이 지나치게 복잡할 때 비판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말하자면 '이거 가치에 비해 너무 비싸요!', '너무 복잡하고 짜증나요!'. '이게 도박이랑 뭐가 달라요!'라는 소비자의 불만 및 사회적 시선인데, 그 불만을 잠재울 만한 가치를 제공하거나 알기 쉽고 도덕적인 방식을 고민하는 건 전적으로 업체의 역할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JOGA의 가이드라인으로 바람직한 가챠의 가격 및 확률을 규정하고 있다.)

     


    2. 추후에 발생할 법적/규제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세상은 확률형 아이템에 그렇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이미 루트 박스(가챠, 뽑기)가 불법으로 금지된 국가도 있다. 애플/구글의 지침에도 이미 등재되어 있듯, 유료 가챠를 제공할 때는 최소한 확률을 표기하는 것이 이제 국제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겠다. 

     

    애플/구글의 앱 심사 규정의 경우, 사실은 이미 한국에도 같은 심사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비단 일본(그리고 북미)에서만 엄격한 심사 규정이 반영된 게 아니란 소리다. 

    그러나 앱 심사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 업계 내에 우스갯소리로 '심사원 가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사원에 따라 심사 통과 여부는 제법 (체감될 정도로) 달라진다. 물론 모든 심사원이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합리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나, 규정을 어느 정도로 깐깐하게 적용하는지/얼마나 꼼꼼하게 보는지 등은 충분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짐작하건대 한국에도 '유료 가챠의 확률 표기'라는, 자율 규제보다 좀 더 실효성이 높은 앱 스토어 규정이 존재함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어쩌면 한국에서는 애플/구글의 심사도 '좀 더 느슨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원래 이 정도가 애플/구글이 상정한 심사 난이도인데, 일본 게임 업계는 리스크 헷지를 목적으로 선제적으로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가챠에 규제가 생겨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마치 이번 법제화 발의안처럼 말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 규제가 생길지 모르니 게임 내 모든 시스템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규제에 미리 다 방어를 해 놔야 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업을 함에 있어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히 대비를 해 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소비자 권리'에 관한 부분이다. 

     

    '확률로 판매하는 아이템이지만, 확률은 비공개입니다.'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닌 주장이다. 확률 비공개인 점에 동의하고 구매를 진행했지 않습니까? 라는 논리가 통하기에는 이미 시장이 너무 멀리 왔다. 소비자가 그 확률을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고, 가챠 시행 전에 가격에 대한 가치를 절대로 계산할 수 없는데 이게 정당한 판매 방식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소한 '확률로 판매하는 아이템이고, 그 확률은 이러합니다' 정도가 되어야 현대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으며, 예상되는 반박도 법적 권리 수준이 아닌 '다양성, 재미, 영업 비밀'의 수준에서 카운터할 수 있다.

     

    게임이 산업인 이상,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변화를 예상하고 대응하는 건 필수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가챠 확률 표기가 바로 '가장 예상하기 쉬운' 환경 변화다. 이걸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뒤늦게 따라가면 어떤 손해가 발생할지 기업의 입장에서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산업 전체에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우려하듯, 또 지난 몇 년 간 자율 규제가 시행된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각종 제약을 덕지덕지 붙인 법률 규제로 비즈니스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고, 소비자와의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또 회사 하나만 보고 생각하더라도, '뒤늦게' 게임을 뜯어고치거나 '서둘러' 확률 표기용 시스템을 만드는 등의 대응은 위험도가 높고 비용이 발생하는 대응이지 않나 싶다. 

     

     

    3. 숫자는 때론 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평소 1%의 확률로밖에 나오지 않는 5성, 심지어 원하는 캐릭터를 딱 맞춰 뽑으려면 그 안에서도 1/45, 즉 전체로서는 0.02%의 확률을 뚫어야 하는 고독한 사양의 가챠가 있다고 친다. 

    그런데 어느 특정 기간 동안, 5성의 확률이 3%로 올라가고, 게다가 내가 원하는 그 캐릭터가 등장할 확률도 대폭 높아져서 5성 당첨 시 50%의 확률, 즉 전체로서는 1.5%의 확률로 제공된다고 하자. 

     

    (1.5%의 확률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바로 지금이 '가챠를 뽑아야 할 때'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막연히 '확률 증가!'라고 적혀 있는 것보다 정확한 할인폭과 이득 내용을 제공받는 것이 그 판단을 더욱 촉진시킨다.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당연한 전략이다. 원래 얼마였는데 딱 지금만 얼마로 한정 판매라는 상술은 그렇게 어색하지도 의아하지도 않다. 확률을 표기하지 않은 게임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숫자로 유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제공한 숫자가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 게임에서는 주로 아이템의 가치 그 자체를 무기 삼아서만 장사를 해야 한다. 가격이 얼마가 되든 이 아이템은 매력적이니까 뽑으러 오겠지, 하는, 이른바 '배짱 장사'가 되기 쉽고, '이것이 이득이다'라는 알기 쉬운 숫자가 아닌 게임 내의 체험(이 아이템을 가지면 게임 내에서의 지위가 얼마나 올라가고, 공격력은 얼마나 개선되며, 룩은 얼마나 아름답고...)을 소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몇 년씩 장기 운용을 계획하는 게임의 경우, 게임도 서비스고, 유저는 소비자다. 가챠 할인을 하지 않는 게임도 물론 있을 수 있고, 이건 그 게임 서비스의 판매 전략이니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런 소수의 서비스를 제외한 대다수의 게임에서는 유저에게 제시하는 숫자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일본 모바일 게임의 세일즈 랭킹을 보고 있으면, 유명한 게임이 주기에 따라 랭킹 순위가 하위였다가 다시 상위가 되고 또 하위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이건 게임이 인기가 많아지고 없어지고를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본 게임(확률 표기가 사실상 의무화된 게임)이 유저에게 숫자를 제시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위에 든 예시처럼, 신규 캐릭터가 추가된 기간에는 그 캐릭터의 확률을 올려 준다든지, 월말의 특정한 기간에는 가챠 확률이 올라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보통 이런 전략적인 할인은 한 달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에 랭킹에 부침이 존재한다. 유저도 이 주기를 알고 있으니 때가 되면 로그인해서, 돈을 쓰는 것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한다.

    (참고로, 보통 일본 모바일 게임에서 가장 주력으로 미는 상품은 주로 월말, 15일, 25일 무렵에 나온다. 소비자의 급여일을 고려했을 것이다. 6월, 12월의 상여 시즌, 혹은 회사의 결산 시즌에 맞춘 상품이 나오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비단 게임만의 상술은 아니고, 또 일본에서만 있는 상술도 아닐 것이다.)

     

    무분별한 할인을 남발할 수는 없겠지만, 숫자를 잘 활용해서 소비자에게 납득감을 주면서도 서비스 지표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서 확률 표기-숫자 제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길게 썼지만... 이 글에 적힌 내용을 몰라서 안 하는 게임업계인은 없을 거라 생각하긴 한다. 내가 고려하지 못한(혹은 내가 경시하고 있는) 다른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하면서, 정말로 게임이 환영받는 산업이 되기 위해서 나도 더 노력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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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