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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차돌리기 독서법 -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기
    ARTICLE/BOOKS 2021. 2. 14. 00:46

    이렇게 책을 읽은 지도 오래 되었다. 요즘엔 전자책만 읽는다. 

     

    풍차돌리기 독서법

     

    이건 내가 도서 구독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취하고 있는 독서법이다. 말 그대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 

    검색을 해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독서법이고, ‘병렬 독서법’ 내지는 ‘초병렬 독서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있는 모양이다.

    그 단어를 알기 전 나는 개인적으로 ‘풍차돌리기 독서법’이라고 불렀다. 매달 한 건씩 소액의 정기적금을 들기를 반복하면, 12개월 후에는 동시에 12개의 적금을 붓고 있는 셈이 되고, 13개월부터 24개월까지는 매달 한 건씩 적금 만기가 찾아오는 유명한 저축법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풍차돌리기 독서법으로 독서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장르의 폭도 확연히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전자책이 보급되고 도서 구독 서비스가 활발해진 이 시대에 정말 잘 어울리는 독서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해 본다.

     

     

    방법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전자책 단말기(나는 태블릿PC)에 잔뜩 담는다.

     

    제목과 표지, 목차만 보고 직감으로 고른 책이 대부분이지만, 남한테 추천 받은 책, 읽어야만 하는 책 등 약간 의무감 느끼는 책이 포함되기도 한다. 대충 열 권 정도 고른다.

     

    일단 아무거나 한 권을 펼친다. 첫 2-30페이지 정도를 읽는다. 일반적인 책은 보통 이 정도에서 고비가 온다.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기도 하고, 내용이 너무 어렵기도 하고, 재밌긴 한데 눈이 아파 오기도 한다. 그래서 책 읽기를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럼 그만두고 아무거나 다른 책을 읽는다. 2-30페이지 정도 읽는다. 그만두고 또 다른 책을 읽는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개중 한두 권 정도는 재미있어서 2-30페이지보다 더 읽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내용이 비슷하거나, 같은 주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해서 같이 읽으면 더 속도가 나기도 한다.

    잠깐 쉬고 돌아왔더니 아까 30페이지에서 어렵다고 생각한 책이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할 때도 있다.

    30페이지의 고비를 넘었더니 내용이 급격히 깊어지면서 흥미로워지는 책도 있다.

     

    짧은 호흡으로 읽다가 그만두고, 읽다가 그만두고를 반복하면서 열 권의 책을 조금씩 돌려 읽는다.

     

    짧은 책은 조금만 읽어도 금방 끝이 보이고, 재미있는 책은 팍팍 진도가 나간다. 끝이 보이는 책이 나오면 리스트에 책을 몇 권 더 추가한다. 그것도 처음 2-30페이지를 시작으로, 계속 돌려 읽는다.

     

    이걸 며칠 반복하면 처음으로 완독하는 책이 나오고, 그 후로는 며칠 단위로 한 권씩 차례차례 책이 끝나 간다.

     

     

    포인트

     

    이 방법은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첫 5페이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을 반복해서 이용하는 것이 포인트다.

     

    모든 책이 재미있는 내용일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읽어 보기 전에는 어떤 책이 재미있는 책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지루할 수 있다. 반대로 전체적으로는 따분한 책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재밌기도 하다. 재밌다가도 지루해지는  흐름이 반복되는 분량을 나는 20페이지에서 50페이지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읽다가 지루하면(대체로 2-30페이지 정도 읽으면) 읽기를 그만두고, 재미있으면(5-60페이지 정도 읽어도 술술 넘어가면) 좀 더 읽는다. 지루해지는 타이밍에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책으로 넘어가면, 집중력을 발휘해서 초반 5페이지 정도까진 아무 문제 없이 읽을 수 있다. 지루하게 느꼈던 부분을 쉽게 넘길 수 있는 순간적인 집중력을 만들어내는 것. 이걸 탄력 삼아 읽어나가다 보면 다시 20페이지나 혹은 50페이지 정도에서 고비가 온다. 그때 지체없이 또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짧게 읽기’를 반복하는 것 때문에, 2-30페이지만 읽을 정도의 자투리 시간에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기 쉬울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이 방법은 통으로 연결된 몇 시간의 독서 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하는 지점을 최대한 여러 번 만든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 활용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애초에 자투리 시간밖에 없으면, 지루해지건 말건 그것과 관계 없이 20페이지 읽고 관둘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환경적 준비

     

    이 독서법은 전용 기기를 사용해서 전자책을 읽을 때를 상정한 것이다. 

    종이로 된 책은 무거워서 10권씩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가 없다. 책상에 앉아 쌓아 놓고 읽더라도 상당히 번거로울 것이다. 책갈피를 끼웠다가 뺐다가, 책을 쌓았다가 뒤적거렸다가... 이런 물리적인 동작은 엄청나게 귀찮다. 나는 못 한다.

     

    전자책을 읽더라도 스마트폰으로는 별 효과를 못 보았다. 지루할 때 다른 책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손에 쥐고 있는 게 스마트폰이라면 지루할 때 게임을 켜 버리거나 메시지에 답장을 해 버리고 만다. 초인적인 독서 의지가 있으면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다. 나는 그 정도의 의지가 없어 불가능했다. 그래서 태블릿PC를 사용한다. 이북 리더기도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후술할 ‘밑줄 긋기’의 불편함 때문에 이북 리더기가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다.

     

    돈이 많으면 마음에 드는 전자책을 다 사서 10권을 만들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충 십만 원이다. 갑자기 투자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우니 서 무제한 정기구독을 최대한 활용한다. 두어 권 정도 정가를 주고 산 이북을 읽으면서, 나머지 여덟 권 정도는 정기구독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책을 채운다.

     

     

    효능과 효과

     

    책을 열 권이나 고르면 장르의 폭이 알아서 넓어진다. 열 권을 다 편식하는 장르로만 고르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한 권만 골라야 했을 땐 굳이 고르지 않았을, 선호도 10위의 책도 독서 리스트에 들어간다는 게 큰 장점이다. 나처럼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더 그렇다. 1순위로 읽을 정도까진 아니지만 언젠가는 읽고 싶은 ‘덜 중요한’ 책도 지금 당장 손쉽게 읽기 시작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읽는 책의 폭이 넓어진다.

     

    처음 몇 권의 풍차를 돌리기 시작하는 동안에는 ‘다 읽은 책’이 안 나오기 때문에(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면 필연적으로 완독에 필요한 시간도 길어지니까)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20페이지씩 10권을 읽으면 200페이지, 즉 한 권 분량의 책은 이미 읽은 셈이다. 이만큼 읽은 수고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계속 읽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초반에는 강제적 동기 부여가 된다.

     

    게다가 어느 정도 고비를 넘어서면, 그다음부터는 별 고생을 하지 않고도 며칠에 한 권씩 완독 도서가 뿅뿅 생겨난다. 완독한 순간 새 책을 시작하면 앞으로도 그 사이클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조금만 잘 관리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물론 독서를 하는 절대적인 노력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읽어내는 지루하고 힘든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적금 풍차돌리기라면 통장마다 붓는 적금 금액이 일정하고, 만기가 도래하는 주기도 똑같다. 규칙에 따라 13개월째에 타는 적금은 딱 한 개고, 아무리 노력해도 한 달에 두 개 이상의 적금 만기를 맞이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제각기 분량이 다르고, 내 선호나 취향에 따라 진척도도 달라진다. 이걸로 완독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 어려운 책을 오랫동안 한 권 읽어내는 사이에 쉬운 책을 빠르게 여러 권 같이 읽어내는 식으로 조정하면서, 독서에 대한 모티베이션을 유지할 수 있다.

    모티베이션만 충분하다면 독서량 늘리기는 완전 껌이다. 이쯤 되면 책이 재밌는 게 아니라 독서가 재밌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부작용과 대처법

     

    아무리 독서 그 자체가 재밌기로서니, 책을 많이 읽는 게 독서의 목적인가? 그건 아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그 내용을 파악하고 지식과 감동을 얻는 게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풍차를 돌리면 필연적으로 ‘한 권을 온전히 흐름 따라 읽었을 때 얻었을 인사이트’는 없어진다. 흐름이 끊기면서 놓치는 내용들,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동안 잊어버린 내용들이 나오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짧은 시간 동안 읽는 것 자체에 집중해서 활자는 읽어냈지만, 내용 이해에는 실패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자주 이 함정에 빠진다. 글자를 줄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완전 딴 생각을 하느라 하나도 기억을 못 하고 있는데 페이지만 훨훨 넘어가는 상황.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독서법을 행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밑줄을 그어야 한다. 이때 밑줄은 반드시 ‘글의 흐름 상 중요한 부분’에 긋는다. 지금 작가가 말하고 있는 주장의 핵심이라거나, 설명의 포인트, 등장 인물들이 취하고 있는 중요한 행동, 의미심장한 대사 등에. 

    의도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찾아 가며 읽으려고 노력하면, 기계적으로 활자만 읽어 내려가는 일은 없어진다. 어쨌든 밑줄을 치려면 내용을 읽고 그 의미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해야 하니까. 나중에 완독 후, 밑줄 친 부분만 빠르게 쭉 읽으면 그게 이 책의 요약본이 된다.

    이건 정말 중요하다. 책을 다 읽은 후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이런 책이었다’ 하고 한번 더 스스로 마무리를 지어 주는 것. 풍차돌리기의 최대 단점인 ‘흐름’을 보완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 이 글에서 굵은 글씨만 읽어도, 이 글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눈치채셨나요?). 밑줄은 이런 식으로 포인트가 되는 곳에 긋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태블릿PC를 꾹 터치해서 그냥 기본 색으로 빠르게 밑줄을 긋는다. 진 안 빼고 빠른 템포로 읽어 나가고 싶기 때문에, 굳이 시간 들여 노트에 옮겨 적거나 하진 않는다. 전자책은 어플 자체에서 밑줄만 모아서 보여주기 때문에 책장을 다시 넘기는 수고가 필요없다.

     

    epub이 아닌 pdf책은 밑줄 긋기가 엄청 불편하거나, 애초에 밑줄이 안 그어지는(형광펜 칠은 가능하지만, 모아보기가 안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건... 해결 방법이 없다. 그래서 epub으로도 충분한 내용을 굳이 pdf로 낸 책을 나는 정말 안 좋아한다.

    하지만 보통 pdf로 된 책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라기보단 표와 그림을 곁들인 실용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책이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칠 필요가 사실 별로 없다. 모든 페이지가 다 제각각의 용도로 중요하고 실용적이니까. 그래도 꼭 특별히 정리를 해 두고 싶은 중요한 부분이 보인다면 그냥 사진을 찍거나 캡쳐를 한다.

     

     

    마무리

     

    풍차돌리기 독서법의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좋은 점만 있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독서법인 것처럼 설명했지만...

    사실 이건 전적으로 독서자의 ✌의지✌️에 달린 독서법이라,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사람한테는 절망적으로 안 맞는다는 점이 크나큰 단점이다. 우선 재미없는 책도 대충 20페이지를 읽을 정도의 기본적인 독서력이 필요하고, 풍차만 열심히 돌리고 완독 도서가 안 나올 때의 답답함을 견뎌낼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또 책 읽을 시간이 꾸준히 확보되지 않으면 그냥 20페이지만 읽고 방치해 둔 책만 한무더기가 될 뿐이니, 지속적인 독서를 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근데 어떤 독서법이든 제각기 장단점은 다 있다. 읽는 책의 내용에 따라, 혹은 개인의 성향이나 독서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방법이 있을 테고, 설령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읽었더라도 얻어갈 수 있는 게 없단 얘긴 아니다. 풍차돌리기는 여러 장르의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많이 읽어내고 싶은 경우에 유리한 특징을 갖고 있고, 그 대신 그에 적합한 스킬을 요구할 뿐이다.

    책은 모름지기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로 읽는 게 제일이다. 맞고 그르고가 없으니 다들 좋아하는 책을 재미있게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

KIM YES